2020년 회고

Youngtaek (Robbie) OH
5 min readJan 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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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여러모로 다사다난 했던 해이다.

대외적으로는 코로나로 인해 세상의 풍경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적성을 탐구하느라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

사실은 이 글을 쓸 계획은 없었다. 단 유명 블로거께서 회고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줘서 아무 생각 없이 쓰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 없는 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게 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어났었던 일을 주로 쓸 것이고. 나한테 있었던 일은 그 곳에 적당히 숨겨놓을 것이다.

  1. 무엇 보다 가정적이였던 한 해.

2020년은 어느 해 보다도 가족끼리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도 직장에서 은퇴하셨고, 동생도 이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항상 집에 있다. 나도 코로나 덕택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하반기에는 대부분 집에 있었다. 덕분에 강아지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2020년 내내 어느 때 보다 밥을 같이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우리가족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워졌고, 대학 등 각급 학교도 원격으로 강의를 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온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자주 구독하던 광고 유튜버인 WLDO도 작년 한 해에 주요 기업들이 강조한 메세지 중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Family”라고 한다.

2. 갈등이 반복되는 세상, 낙관적인 자산 가치

2020년은 자산 가치로 보자면 널뛰기가 심했던 해이다.

상반기에는 코로나 쇼크로 주식 시장이 급락하더니. 이내 기대심과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자산 가치가 현금 가치에 비해 급등했다.

하지만 세계 정세는 점점 더 고립주의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원유 수출국이 되었고. 영국도 EU를 탈퇴했다. 중동 갈등이 해결되기는 커녕 더 고조됐고. 남북관계, 한일관계, 한중관계 진전은 아직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분간 세계 무역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지 걱정된다. 세계 여행이 갑자기 활황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세계정세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세만 하더라도 갈등을 해결할만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더이상 다른 나라를 뛰어넘자는 목표가 매력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복지국가로 천명하기엔 다들 여유가 매말라 버렸다. 목표도 나눌 것도 없는 상황에서 코스피 3000돌파의 외침이 아이러니해 보이기 까지 한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트럼프의 계정을 동결시키며 쓴 글(이건 2021년에 일어난 일이긴 하다)의 댓글을 보면. “왜 당신이 검열을 하는가”라는 댓글이 많다. 이걸 보면서 느낀 사실은, 이제 정부가 아닌 플랫폼 기업에서 정부에 준하는 갈등 중재 권한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갈등의 중재를 해결하는 집단이 정통적인 권력 기관에서 다양한 주체로 넘어갈텐데. 그 주체들은 더 이상 표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먹고 산다는 점에서 갈등 해결 방법이 이전과는 많이 다를 수 있겠다 싶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늘어난 자산 가치가 더 나은 번영을 위한 씨앗이길 바란다. 하지만 내심 황금 사과가 아닐까 걱정 되는 것은 사실이다.

3. 만나지 않아도 정은 있는가

사실 예전부터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같은 길드원들 끼리 실제 친구들 보다 더 끈끈한 정을 느끼는 경우는 많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중학교 때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레이드를 한 번 할 때마다 4시간에서 6시간 정도를 그들과 같이 호흡을 맞춰야 했다. 비록 가상이지만 전장에서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와 더 친해지는건 어쩔 수 없다.

영화 Her에서는 주인공인 티어도르가 우리나라로 치자면 심심이정도 되는 AI인 아만다와 사귀는 장면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서 말을 아끼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접촉의 모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볼 만한 내용들이 나온다. AI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며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코로나로 인해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다양한 관계를 이어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관계가 많이 정리됐거나. 사실 만남 없이도 정을 충분히 붙일 수는 있지만, 만났을 때에 전달되는 정보의 양을 온라인에서 아직 구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나지 않았을 때에도 감정이 전달되려면 부족한 정보의 양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아직까지는 상상력이 없으면 가족 외에 관계는 소원해지기 쉬울 것 같다.

4. 스토리가 없는 삶의 목표

각종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계량하려 한다. 금수저는 어디부터고. 누구는 누구랑 결혼해야 급이 맞는다. 직장은 어디는 무슨급, 적어도 어느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등등. 흔히 타인이 선택해준 목표라고들 한다.

사실 이런 반응을 전면으로 비판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지간하게 고고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러한 기준들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어도 속으로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생물체고, 그 기준이 아무리 형편없다 하더라도 평판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저런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저런 것이 과연 삶의 원동력이 되는지는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남을 깨부수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저런 것들도 충분히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그렇게 자극이 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해서 멋있는 영상을 하나 찾았다. 고든 램지의 스승인 마르코 세프의 영상이다.

몇가지 인상적인 장면만 요약하자면

  • 미슐랭 3스타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받는 여정은 재미있었다.
  • 그러다가 어느날 어떤 식당을 갔는데, 가족끼리 피자랑 파스타랑 카놀리를 먹는 것을 보고. 거기서 행복을 찾았다. 더이상 몇명의 부유한 사람에게 3스타 요리를 하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요리를 먹게 해주는 것이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 이야기가 레시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레시피는 나에게 혼란을 주지만, 이야기는 나에게 영감을 준다.
  • 인생에 영감을 주고 나아가 꿈을 꾸게하는 이야기야 말로 성공을 낳는다.
  • 아무리 음식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거기에 이야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story)라는 말이 조금 추상적이고 좀 모호한 의미로 쓰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야기란 적어도 영감을 주는 그 무언가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목표가 세속적이여도 좋고 멋있어도 좋은데,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있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단순히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도 거기에 본인의 스토리가 있으면 멋있는 꿈이다. 반대로 수도승이라는 고고한 목표를 가졌더라도 그 이유가 어릴 때 부터 동자승이라서 가야하는 어쩔 수 없는 진로라면 사실 의미가 없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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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taek (Robbie) OH

Decipher, Haechi Labs, Computer Science(graduate student), B.S in Astronomy